문어 빨판의 구조 분석한 우리대학 동문, 네이처 표지 장식하다
INTER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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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14
http://biz.sookmyung.ac.kr/bbs/sookmyungkr/82/195740/artclView.do?layout=unknown

우리대학을 졸업한 40세의 젊은 과학자가 세계 최고의 과학저널인 네이처(Nature)의 표지논문을 장식했다. 주인공은 지난 2006년 우리대학 화학과를 나와 현재 텍사스대 사우스웨스턴병원 신경과학과에서 박사후 연구원으로 재직 중인 강깊은 동문(화학02). 강 동문은 지난 4월 13일 네이처 표지에 문어의 맛 수용체 구조를 밝힌 논문과 문어와 오징어의 화학촉각 수용체를 비교한 논문 2편을 연달아 게재해 학계의 큰 주목을 받았다. 이에 우리대학은 지난 6월 8일 강 동문을 초청해 연구와 학업을 성공적으로 이어나가고 있는 동문의 이야기를 듣는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 참석하지 못한 숙명인들을 위해 커뮤니케이션팀이 강 동문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1. 먼저 네이처지의 표지 논문에 선정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과학자들은 평생 한 번이라도 네이처에 이름을 올리는 게 꿈이라고 들었는데 표지를 보신 순간 소감이 어떠실까요?

 

너무 감사하고 영광스럽죠. 사실 이 연구에 참여했다는 것만으로도 큰 기회이자 영광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네이처 표지를 보니 ‘이게 정말 현실인가’ 싶었습니다. 주변에서도 기사를 봤다며 연락도 많이 오고 링크드인으로 논문 잘봤다고 메시지도 많이 받았어요.

 

2. 이번 연구는 어떻게 진행하신건가요?

 

여러 분야의 연구자들이 융합하여 결과물을 내는 것이 요즘 연구의 트렌드인데 저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번 연구는 제가 속한 텍사스대 사우스웨스턴 신경과학과 라이언 힙스 교수 연구팀과 하버드대 분자세포생물학 니콜라스 벨로노 교수 연구팀이 함께 진행했습니다. 하버드 팀에서 앞서 문어의 빨판에 관한 기능실험을 해왔는데, 문어의 빨판에 있는 수용체가 어떤 단백질 구조를 가지고 있는지 저온전자현미경으로 분석하는 일을 저희가 이번에 담당한 거지요. 그 결과 문어의 빨판에 있는 화학촉각 수용체가 단백질 5개로 구성된 원통 구조임을 밝히고 수용체 단백질을 만드는 유전자도 발견해 이들의 조합이 다양한 맛을 감지할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규명했습니다.


강깊은 동문의 연구결과가 실린 2023년 4월 13일자 네이처 표지(출처: Nature)

 

3. 주목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후속 연구에 대한 부담이 있으실 것 같습니다.

 

앞으로 계속 해당 분야 연구를 한다면 그렇겠지만, 사실 다음달부터 미국 메릴랜드에 있는 아스트라제네카에서 근무할 예정입니다. 이번에 한국에 온 이유도 박사후연구원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직장으로 이동하기 전 가족들을 만나기 위해서에요.

제약회사 연구는 지금까지 제가 했던 것과 다르겠지만, 새로운 것에 대한 궁금증도 있고 계속 배우고자 하는 마음으로 입사를 결심했습니다.

 

4. 숙대에서 석사까지 공부하셨습니다. 연구자로서 진로를 어떻게 정하신 건가요?

 

2002년에 자연과학부로 입학했어요. 1학년 때 어느 학과로 갈지 고민하던 시기에 함시현 교수님을 만나게 됐어요. 일반화학 수업을 가르치셨는데 숙대 선배이시기도 해서 진로상담을 받다가 화학과로 진로를 굳혔죠. 그때 기억나는 교수님의 말씀이 ‘물리는 너무 범위가 좁고 생명은 너무 넓다. 화학이 최고다였죠.(웃음)’

교수님이 학부 인턴을 선발한다고 하셔서 1학년임에도 불구하고 여러 번 찾아가 요청드린 끝에 유일한 1학년 인턴으로 일하기도 했어요. 컴퓨터과학을 복수전공한 것도 교수님의 권유 덕분이었습니다. 배울 때는 정말 어려웠는데 나중에 돌아보니 실무에 있어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5. 함 교수님과의 인연이 많은 영향을 준 것 같습니다.

 

저는 귀인을 만났다고 생각해요. 중요한 결정을 할 때마다 교수님이 많은 도움을 주셨거든요. 교수님이 완벽주의 성향이셔서 무서운 면도 많지만, 일 외적으로 학생들과 정말 스킨십이 많은 분이셨어요. 학생들과 모교에 대한 애정이 정말 넘치셨죠.

언젠가 한번 교수님과 단 둘이 광주에서 열린 학회에 참석한 적이 있는데 제가 조교 경험이 없다 보니 숙소를 어느 모텔로 잡았거든요. 나중에 알고보니 심지어 제가 예약한 방도 아니었어요. 교수님이 숙소에 도착하셔서 굉장히 당황하시고 저도 안절부절 못했죠. 그런데 혼내시는게 아니라 ‘내가 너 덕분에 이런 경험도 해본다’고 웃으시며 말씀해주셨어요. 교수님과 그렇게 온돌방에 이불 깔고 누워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는데 지금 생각하면 정말 특별하고 재미있는 추억인 것 같습니다. 함 교수님이 만약 지금도 살아계셨다면 이번 논문도 칭찬 많이 해주시고 수고했다고 말씀해주셨을 것 같은데 아쉽습니다.

 

2005년, 학부 인턴 시절 함시현교수 및 연구원들과 함께 학회 포스터 발표 대회에 참여한 모습

 

6. 해외 유학은 어떻게 결심하셨어요?

 

해외에서 공부하면 어떤 기회가 있을지 늘 궁금했어요. 뭔가 새로운 길이 펼쳐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고,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국내와 다르게 어떻게 공부와 일을 하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부모님 영향도 있어요. 아버지가 한국외대 교수님이셨고, 어머니도 여성개발원에서 오래 일하신 뒤 숙대에서 강의를 하기도 하셨거든요. 그 모습을 보고 공부를 계속하다보면 다양한 기회가 생기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석사를 마치고 UCSD(캘리포니아대, 샌디에고)의 입학허가를 받아 박사 과정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7. 학부 시절 어떤 경험이 본인의 성장에 가장 도움이 된 것 같으세요?

 

아무래도 함 교수님 연구실에서 학부 인턴을 한 것이 연구자로서 가장 큰 도움이 됐죠. 또 국제학술동아리 SM-PAIR랑 외부 국제 봉사단 활동을 한 것도 기억에 남네요. 대학 다닐 때 러시아 시베리아의 사하공화국으로 봉사를 가서 태권도, 사물놀이 같은 한국 문화 교류 활동을 한 것이 외국 생활에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8. 오랜만에 모교에 와서 후배들을 대상으로 특강을 하시는 기분이 어떠세요?

 

학부생 때 꿈 중 하나가 모교에서 강의하는 거였어요. 오늘 비록 세미나 형식이긴 하지만 상상만 하던 것이 현실이 되니 실감이 안 나고, 설렙니다. 대학 시절 저도 늘 진로에 대해 고민이 많았고, 누군가 나에게 이러한 얘기를 해주었으면 좋겠다 싶었는데 오늘 세미나에서 제가 후배들의 궁금증을 조금이나마 채워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유학을 가고 싶어하는 후배들에게 제가 유학하며 겪은 어려움, 그 과정을 극복했던 이야기를 나누며 도움을 줄 수 있으면 좋겠어요.

 

 

9. 끝으로, 동문님에게 숙명여대는 어떤 의미일까요?

 

저한테 모교인 숙명여대는 절대 지울 수 없고, 항상 저를 따라다니는 이름표입니다. 예전에 영어 학원을 다닐 때 같이 공부하던 한 중년 남성 분께서 여대에 대해 박한 평가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그 말을 제가 꼭 반박하고 싶고 인식을 바꾸고 싶다는 결심을 했어요. ‘저 친구 숙대 출신인데 일을 참 잘해’라는 말이 나올 수 있게요. 그래서 내가 잘해야 모교의 이름도 드높일 수 있다, 최소한 학교 명예에 누를 끼치진 말자라는 책임감을 갖고 살아온 것 같습니다. 저도 함 교수님만큼은 안 되더라도, 후배들에게 어떤 롤모델이 되겠다는 생각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