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는 단지, ‘재도약을 위한 쉼’이 될 거예요.” 아나운서 유선경 동문
INTER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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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04
http://biz.sookmyung.ac.kr/bbs/sookmyungkr/82/146362/artclView.do?layout=unknown

바쁘고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두 발을 단단히 디디고, 두 눈을 부릅뜬 채 정신을 바싹 차려야 하는 직업인 아나운서. 끊임없이 세상의 흐름을 지켜보고 공부하며 연구해야 한다고 말하는 아나운서 유선경 동문(의류06)을 숙명통신원이 만나보았다.




1.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유선경이라고 합니다. 2002년에 입학했고, 그로부터 10년 뒤인 2012년에 MBC에 입사해 주로 뉴스를 진행했습니다. 이렇게 선후배님들과 동문들을 만나 뵙게 되어 정말 반갑고 영광스러워요. 부족한 저에게 인터뷰 기회를 주신 숙명 통신원 관계자 여러분께도 감사드립니다.

 

2. 우리대학 의류학과를 졸업하셨는데 어떻게 방송업계로 진로를 정하셨나요? 아나운서라는 꿈을 갖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쯤이었던 것 같아요. 당시에는 지상파 채널 몇 개가 전부였고, 그중에서 MBC가 독보적인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때 9MBC 뉴스데스크의 평균 시청률이 40%대였다는 사실을 요즘 친구들이 들으면 아마도 두 눈이 휘둥그레질 것 같네요. 당시 MBC 뉴스는 깨어있고, 살아있는, 언론의 표본으로서 시대를 선도하고 있었어요. 9시 뉴스데스크의 웅장한 오프닝 음악을 들으면 가슴이 뛰기 시작한 게 아마도 열한 살 아니면 열두 살쯤이었던 것 같네요. 뉴스를 진행하는 여자 앵커의 멋진 모습을 보며, ‘나도 저 자리에 앉아 보고 싶다.’고 생각하던 것이 시작이었어요.

 

3. 언론 계열의 진로를 희망하는 학우들이 높은 진입장벽 때문에 포기하는 경우가 많은데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꿈을 이뤄나갈 수 있었던 원동력이 무엇인가요?

 

사실은 저도 한 번 포기해본 적이 있는 사람이어서 절대로 포기하지 말라라고 강권은 못하겠네요. 2002년 하반기에 숙명여자대학교 방송국(SBS) 아나운서 분야에 지원해서 합격했어요. 그런데 겨우 두 달 정도 다녔던가요. 선배, 동기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자리를 박차고 나왔어요. 표면상의 이유는 전공과 병행이 어렵다는 것이었지만, 실상은 자신감 부족이 더 큰 문제였습니다.

언론 고시를 본격적으로 준비하는 선배, 동료들을 보니 크게 주눅이 들고 말았어요. 제가 가진 자질 정도로는 아나운서 시험장 근처에도 못 가겠다 싶었고, 그렇게 도망치듯 포기했어요. 아나운서의 꿈을 접고 정말 운이 좋게도 졸업 후 곧바로 원하던 직장에 입사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제게 주어진 일이 너무도 고되고 심지어 무료하게 느껴지기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2년쯤 후에야 비로소 무엇이 문제였는지를 깨달았습니다. 저는 단지 안정된 직장에 취업하고 멋져 보이는 직업을 얻고 싶었을 뿐, 그 안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관심이 없었던 거예요. 원하던 자리를 얻은 순간 이미 목표가 사라져버렸으니 허망할 수밖에요.

스물일곱 살 무렵 그 길로 회사를 그만두고 정말 하고 싶었던 아나운서 일을 하기 위해 늦깎이로 준비를 시작했어요. 백지상태로 아나운서 시험 준비를 시작하기에는 많이 늦은 나이였지만 도전해보기로 했죠.

길을 많이 둘러온 만큼, 포기와 도전의 기로에 서본 경험도 많았던 것 같아요. 하지만 계속 도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제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찰이었어요. 그리고 그 결론은 꿈은 어떠한 자리나 모습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어요. 그렇게 가진 꿈은 강한 원동력이 되지 못할뿐더러 깨져 버리기도 쉬워요. 하지만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구체화되면 꿈은 저절로 생명력을 얻기 시작해요. 저의 경우에는 누군가에게 어떤 소식을 전달해주는 일이 제 가슴을 뛰게 만들었어요.

누구든 포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꿈을 가슴에 품고 도전을 멈추지 않는다면 포기는 단지 재도약을 위한 쉼이 될 것입니다.

 

4. 최근 오디오클립 ‘MBC 뉴스배달 유선경입니다.’를 진행하시는데 오디오클립이 정확히 어떤 플랫폼이며 기존의 뉴스 진행과 다르게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궁금합니다.

 

네이버 오디오클립은 영상 없이 음성만으로 다양한 콘텐츠를 전하는 매체입니다. 바쁜 현대인을 위해서 책을 읽어주는 프로그램은 물론, 혼자나 여럿이서 특정 주제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나누거나 정보를 전달하는 등 수많은 형태의 채널이 있습니다. 오디오클립은 형태의 제약 없이 지금도 꾸준히 변화 중입니다.

다가올 미래는 인공지능의 시대로 무엇이든 음성으로 명령하게 됩니다. 인공지능이 일상 깊이 파고들면서 두세 가지 일을 동시에 하게 되는 멀티태스킹이 자연스러워지지요. 주로 무언가를 귀로 들으면서 다른 일을 하게 됩니다.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오디오 콘텐츠입니다.

최근 들어 개인 방송 채널이 부상하는 것처럼 오디오 콘텐츠 시장도 몇 년 안에 성행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예측합니다. 이미 해외에서는 오디오 채널이 현재의 개인 영상 채널처럼 급성장하고 있습니다. MBC도 향후 주목받을 오디오 시장을 선점하고자 오디오 콘텐츠를 개발하기 시작했고 저는 그중에서 뉴스 부분을 맡아 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 채널의 특징은 콘셉트 기획부터 기사 선정, 녹음, 편집, 업데이트까지 전 과정을 한 사람이 주도한다는 것입니다. MBC의 보도 관련 지향점과 정체성은 유지하면서도 전달자의 개성을 좀 더 드러내는 콘텐츠를 만들어보자는 것이 ‘MBC 뉴스 배달 유선경입니다.’의 제작 의도입니다.

과거에는 앵커가 수년간 MBC 내의 거의 모든 뉴스를 맡아 진행했어도 기획이나 기사 선정은 다른 사람의 몫으로 뒀습니다. 앵커의 주된 업무는 전달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오디오클립을 통해 기획과 기사 선정 등의 업무를 담당하며 나무 한 그루만을 보다가 숲 전체를 보게 된 것처럼 뉴스를 보는 시각이 완전히 달라졌음을 느꼈습니다. 아직은 부족한 부분이 많지만, 전달자가 결과물의 전 과정에서 정성을 들이는 독특한 뉴스인 만큼 새롭게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5. MBC 뉴스투데이, 3시 경제뉴스, 이브닝 뉴스 등 다양한 시간대 및 분야에서 뉴스를 진행하셨는데 이러한 경험을 통해 어떤 점을 배우셨는지 궁금합니다.

 

뉴스는 진실입니다. 때로는 오보도 있겠지만, 기사의 한 자, 한 자는 정보력을 가지는 중요한 요소이기에 전달하는 순간만큼은 조금의 거짓도 없이 현실 세계를 그대로 옮겨 말해야 합니다. 더불어, 뉴스에서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시의성입니다. 새로운 소식은 유통 기한이 매우 짧아서 시간이 조금만 흐르면 최신 소식의 값어치를 금방 잃어버리고 맙니다.

이 두 요소 때문에 뉴스를 진행하는 사람인 앵커는 세상에 두 발을 단단히 디디고 두 눈을 부릅뜬 채 정신을 바싹 차리고 있어야 합니다. 세상의 흐름을 끊임없이 지켜보고 계속 공부하며 연구해야 합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뉴스를 진행하면서 세상 보는 안목이 넓어짐을 느꼈습니다. 넓어진 안목을 바탕으로 더욱 호소력 짙게 뉴스를 진행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됐어요. 세상의 모든 일이 그러하지만, 앵커 또한 뉴스 진행 경력이 많아질수록 더욱 질 좋은 뉴스를 전달할 수 있게 됩니다. 앵커는 업무와 자기계발이 같은 선상에 있는, 흔하지 않은 직업입니다.

 

6. 언론 분야에도 뉴미디어 플랫폼이 활발하게 도입되고 있는데 앞으로 도전해보고 싶은 일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실무진 회의 중에 여러 가지 방법으로 각 뉴스에 대한 전달자의 감정을 드러내어 보자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뉴스는 정확성과 신뢰를 생명으로 하기에 아직은 뉴스의 본질을 깨는 시도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게 결론이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뉴스도 틀을 바꾸어 기존과는 다르게 변신을 시도할 것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뉴스의 기본 원칙은 지키면서도 시대를 앞서나가는 새로운 틀을 계속해서 구상해나갈 생각입니다.

 

7. 아나운서로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자질, 덕목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아나운서는 한 회사에 속해 각종 업무를 담당하는 전문 방송인이에요. 뉴스, 라디오, 예능, 교양, 스포츠 등 다양한 업무를 해내야 하는 전천후 방송인이지요. 업무 장소 역시 반드시 스튜디오로 국한되는 것이 아니며 어떤 장소,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림 없이 안정적으로 방송을 진행해야 해요. 그러기 위해 가장 중요한 덕목은 순발력과 공감 능력, 그리고 이 두 가지를 아우르는 인격적 성숙이라고 생각해요.

완전함은 신의 영역과 가까워서 방송 역시 모든 부분이 항상 완벽하게 통제될 수만은 없어요. 심지어 뉴스 특보를 진행할 때는 대본이 아예 없는 경우마저 생겨요. 이럴 때는 평소 쌓아 두었던 지식과 순발력으로 공백을 메워야 해요. 그때 비로소 진정한 아나운서로서 능력을 평가받게 돼요. 예능이나 교양 프로그램에서는 아나운서의 공감 능력이 매끄러운 진행을 결정짓기도 하지요.

또한, 모든 프로그램의 언어적, 비언어적 표현에서는 아나운서의 인격적 성숙이 묻어날 수밖에 없어요. 이것이 시청자들을 잡아끄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해요. 당장 지금부터 주변 사람을 좀 더 사랑하고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면서 사람 됨됨이가 만들어진다고 생각해요.

 

8. 숙명여대에서의 경험이 방송 관련 업무에서 활용되었던 적이 있나요? 그런 의미 있는 경험이 있다면 공유 부탁드립니다.

 

대학 시절, 우리대학이 자매결연을 한 중국의 한 대학에서 어학연수를 하고 현지의 회사에서 산학협동 해외 인턴십을 하며 2년가량 중국에서 머문 경험이 있습니다. 중국의 전망을 눈여겨보신 전공 교수님의 선견지명으로 구성된 프로그램이었는데요. 숙명여자대학교라는 안전한 울타리 안에서 중국을 경험하고 배웠던 점이 지금 생각해도 참으로 감사한 일이에요. 중국 현지의 회사들을 방문해 자기 PR을 하며 인턴 자리를 따내고 직접 실무를 해봤던 경험들이 나중에 아나운서 시험을 치르고 방송 활동을 하면서 용기가 필요할 때마다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9. 사람들의 기억 속에 어떤 아나운서로 남고 싶은지 궁금합니다.

 

무엇보다도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착한 사람이 성공하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저의 가장 큰 소망이자 소명이에요. 아무리 오랜 시간이 걸려도 진리와 진심은 결국 드러나게 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당장의 목적을 이루기보다 많이 돌아가더라도 다른 사람을 도우며 천천히 함께 가고, 저 자신에게도 당당한 사람으로 남고 싶어요. 시청자 한 분, 한 분을 존중하고 더 행복하게 만들려고 노력했던 아나운서, 그리고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그리고 저의 희망 사항입니다만, 저는 뉴스 진행이 즐거워서 앞으로도 뉴스만을 전문으로 하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과거와 같이 기사를 그대로 잘 읽기만 해서는 안 될 거라고 생각해요. 이미 타사에서는 인공지능 아나운서가 뉴스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앞으로 더 많은 직업을 인공지능에 양보해야 할 겁니다. 그럼에도 인간만의 감성을 담은 직업은 여전히 남을 거예요. 뉴스를 전하는 사람의 섬세한 감성과 호소력은 인공지능이 따라잡을 수 없다고 생각해요. 저는 인공지능이 앞설 수 없는 따뜻한 뉴스’, ‘개성 있는 뉴스를 진행하는 앵커가 되고 싶습니다.

 

10. 마지막으로 방송 혹은 미디어 산업으로 진로를 정하고 꿈을 향해 달려 나가는 후배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방송 관련 일이라고 하면 대체로 멋지고 화려한 모습을 떠올리실 거예요. 하지만 그것만 보고 무작정 달려 나가기 전에 상상 속 밝은 조명을 끄고 내가 왜 그 일을 하고 싶은지를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방송 일이라고 늘 멋지기만 한 것은 아니에요. 아나운서는 단 몇 분을 위해서 종일 공부하고 연습해야 합니다. 외부 촬영에서 윗옷도 걸치지 못한 채 몇 시간씩 추위에 떨어야 하는 경우도 다반사입니다. 내가 하는 일을 사랑하는 마음이 깊지 않다면 수없이 찾아오는 고비를 넘기기가 쉽지 않아요.

다만, 진로에 대한 고민은 치열하게 하되 방 안에서만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고민을 줄이고 분명한 선택을 위해서 실무적인 경험을 다양하게 해보시길 권합니다. 어느 분야에서든 직간접적으로 실무를 경험하게 되면 진로 선택에 많은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자기 확신이 쌓이면 자기 발전이 가능하고 쉽게 무너지지 않는 강력한 꿈의 힘을 얻게 되실 거예요.

전 세계에서 자신만의 분명한 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고작 3% 정도라고 합니다. 가슴 뛰는 꿈을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당신은 이미 특별한 사람입니다. 진심으로 후배님들의 꿈을 응원합니다!

 

취재: 숙명통신원 19기 부지예(한국어문학부20), 20기 김연서(경제학부20), 20기 김다정(미디어학부20)

정리: 커뮤니케이션팀